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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실록

노론 북학파의 학통과 정치사상을 계승한 이들

by 사람(史覽) 2025.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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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준,

 

조선 말기 1870년 말 미주를 가다.

https://www.youtube.com/watch?v=H8jYORI_x9A&pp=ygUY7Jio6rOg7KeA7IugdHYg7Jyg6ri47KSA

 

 

https://www.youtube.com/watch?v=Yd9CLgtzk4Q&pp=ygUV7Jio6rOg7KeA7IugdHYg66-47KO8

 

미주를 3년

만리길을 돌아왔다고 한다.

 

이후, 

 

 

 

고종실록33권, 고종 32년 9월 11일 무신 1번째기사 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4년

일본국 대사인 이노우에 가오루를 노문하도록 명하다

내부 협판(內部協辦) 유길준(兪吉濬)에게 특파 일본국 대사(特派日本國大使) 백작(伯爵)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귀국하는 것을 노문(勞問)하라고 명하였다.

 

노문(勞問) : 신하()를 위문()함.

--> 신하?

 

 

 

고종실록34권, 고종 33년 2월 11일 양력 6번째기사 1896년 대한 건양(建陽) 1년

유길준 등을 기한을 정하여 체포하라고 명하다

조령을 내리기를,

"죄가 있으면 반드시 승복시켜 나라 법에서 도피하지 못함은 상리(常理)이다. 아! 지난 8월 20일 사변이야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은밀히 꾸민 흉악한 음모와 교활한 계책은 구문(究問)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우리나라의 모든 백성들이 다같이 알고서 함께 분노하는 것이다. 그 우두머리 악한은 사실 몇 사람에 지나지 않는데 오늘 하늘의 이치가 매우 밝아서 역적의 우두머리는 처단되었다. 도망친 죄인 유길준(兪吉濬), 조희연(趙羲淵), 장박(張博), 권영진(權濚鎭), 이두황(李斗璜), 우범선(禹範善), 이범래(李範來), 이진호(李軫鎬) 등은 기일을 정해 놓고 잡아오며, 그 나머지는 당시에 부추김과 사주를 받았던 자라도 사세(事勢)에 구애되거나 권력에 강요당했을 뿐이니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일체 우리의 대소 신료(大水臣僚)와 중외(中外)의 군민(軍民)은 각기 그 전과 같이 안착하고 의심을 품지 말라."

 

 

https://sillok.history.go.kr/id/kza_13302011_006

 

 

1884년 초부터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서재필 등은 정변을 계획했고, 그해 7월부터 계획을 세워 그해 12월 4일 정변을 일으켰다.

 

유길준은 갑신정변 직전 미주를 방문하고 돌아와 옥에 갇혀 '자미주귀구남산하' 한시를 옥에서 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과 거래를 하는데 미국에 3년이나 갔다올 리가 있겠는가.

 

개화파의 탄생

노론 북학파의 학통과 정치사상을 계승한 이들은 문호개방을 전후하여 박규수오경석유대치 등을 중심으로 그 움직임이 보다 적극화되고 조직화되기 시작했으며, 김윤식김홍집어윤중 등의 문인들을 길러냈고, 1870년대 개항기에 와서는 김옥균홍영식박영교박영효서광범서재창서재필유길준윤웅렬윤치호 등 젊은 문인들을 길러냈다. 이들을 중심으로 1880년대 이후 하나의 정치세력을 형성해가며 개항론을 주장하며 정부의 개화정책을 뒷받침했다.

 

 

역적 유길준.

아래-->

https://sillok.history.go.kr/id/kza_13306027_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