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이라 국사편찬위에서 위 제목을 썼지만, 태조 때 국호를 조선이라 한 적 없다.
아무튼 아래 기사를 보면 해석해 놓은 수준이 기가 막힌다.
중국? 예부에 회답 자문을 보내다.
"귀 예부(禮部)에서 보낸 자문 안에 있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하나 접수하였습니다. 생각건대 작은 나라가 서양 여러 나라들의 빈번한 침범을 받게 되어 큰 나라에서 극진히 돌보아주시는 근심을 끼쳤습니다. 그리하여 일체 변경에 관계되는 정보에 대하여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듣는 대로 기미가 있을 때마다 급히 자문을 보내어 통지하여 주었으니 그 덕이 매우 큽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신문에 실린 서양 각 나라와 일본의 정세 다섯 가지를 가지고 자문을 보내어 펼쳐 보이고 미리 방지할 방도를 명확하게 찾아야 한다는 뜻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니 삼가 변경의 경계를 엄하게 단속하고 관문을 잘 막으며 싹트지 않은 기미를 미리 탐지하여 만일의 경우에 대처할 방비를 시급히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신문의 여러 조항 가운데 일본에 관계되는 곳에 이르기를, ‘신라왕(新羅王)의 아들이 와서 조회하였다.’라고 하고, 또 이르기를, ‘신라왕이 고려(高麗)와 백제(百濟)를 항복시켰을 때에도 와서 투항한 사람이 있었다.’라고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원래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근거가 없는 허망한 것입니다. 또한 이르기를, ‘문록(文祿) 원년(1592)에 군사를 보내어 조선을 정벌하였다.’라고 한 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소경왕(昭敬王 : 선조(宣祖)) 임진년(1592)에 침입을 받은 사실을 가리킨 것인데, 자기들이 패배한 것을 승리한 것으로 꾸몄으니, 교묘하게 사실을 변경시킨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조선 왕이 5년마다 매번 강호(江戶)에 와서 대군(大君)에게 절을 하고 만나보았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조선에 가서 징벌하였으므로 이로 인하여 조선이 5년에 한 번씩 조공을 바쳤는데 지금에 와서 배반하고 복종하지 않는 것은 그 규례가 오랫동안 폐지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겉으로만 받드는 척하는 버릇이 이미 미운 데다가 모멸하고 모욕하는 말이 끝이 없으니 진실로 많은 변명으로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글을 이미 눈으로 직접 본 이상 또한 어떻게 차마 보통 문제와 같이 여기고 잠잠하게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귀 예부에서는 이런 정상을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回咨文曰: "貴部咨內事意, 一一承領。 而竊念弊邦近緣西洋諸國迭來侵擾, 仰詒上國惓惓之憂。 凡係邊情不揀巨細, 隨聞隨機耑咨通知, 優渥隆摯。 今又以新聞紙所載各洋及日本情形五條, 具咨開示, 諭之以確訪豫防之意。 謹當戒飭邊圉、修捍關隘, 逆探未萌之機, 亟設不虞之備。 第惟新聞紙諸條內事係日本者, 有曰‘新羅王之子來朝’, 有曰‘新羅王, 降高麗、百濟, 亦來降者’, 東國紀載原無是事, 根据失實自歸虛妄。 有曰‘文祿元年, 遺兵伐朝鮮’云者, 卽指弊邦昭敬王壬辰被兵事, 而諱敗飾勝, 變幻事實。 有曰‘朝鮮王每五年, 必至江戶, 拜謁大君’, 有曰‘往討朝鮮, 因朝鮮五年一朝貢, 至今負固不服, 此例久廢故也。’ 其陽浮慕尊之習, 已是可厭, 誣衊汙辰之說, 罔有攸極, 固不足多辨。 而似此可駭文字, 已經目覩, 亦豈忍視若尋常, 泯默無言乎? 煩乞貴部諒此情實。"
回咨文曰 : 회자문왈 - 문자로 답이 돌아왔다는 ...
貴部咨內事意 :귀부자내사의
첫 문장이 이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어디 있는가?
한자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눈깔이 있는건지. (욕 나온다.)
위 밑줄친 부분을 해석해도 엉망.
중요한 건 이때부터 역사를 지들 마음대로 고치고 썼다는 뜻이다.
https://sillok.history.go.kr/id/kza_10403007_005
구글 AI 해석
今又以新聞紙所載各洋及日本情形五條, 具咨開示, 諭之以確訪豫防之意
음독: 금우이신문지소재각양급일본정형오조, 구자개시, 유지이확방예방지의
해석
현대 한국어 해석: "이제 또 신문지에 실린 서양 각국과 일본의 정세 5개 조항을 갖추어 보내니, 이를 분명히 살펴보고 미리 대비하라는 뜻으로 타이르는 바이다."
해설:
이 문장은 고종 21년(1884년) 8월 16일, 고종이 김윤식에게 내린 하교의 일부입니다. 당시 조선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외교적, 군사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 今又(금우): "이제 또" 라는 의미로, 이전에도 비슷한 지시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 新聞紙所載(신문지소재): "신문지에 실린 바" 라는 뜻으로, 당시에도 신문을 통해 해외 정세를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各洋及日本情形五條(각양급일본정형오조): "서양 여러 나라와 일본의 정세에 관한 다섯 가지 조항"을 의미합니다. '양(洋)'은 서양을 뜻합니다.
- 具咨開示(구자개시): "자문을 갖추어 열어 보인다" 또는 "내용을 갖추어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자(咨)'는 자문 또는 보고의 의미를 가지는 공문서의 한 종류입니다.
- 諭之以確訪豫防之意(유지이확방예방지의): "그것으로써 확실히 살피고 미리 방비하라는 뜻으로 타이른다"는 의미입니다. '확방(確訪)'은 확실하게 방문하거나 상세히 조사하라는 뜻이며, '예방(豫防)'은 미리 막는다는 뜻입니다.
요약하자면, 고종 황제가 당시 해외 정세에 대한 정보를 신하에게 전달하며, 이를 면밀히 검토하여 국가의 안위를 위해 미리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당시 조선 조정이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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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밝혀졌다.
'양'과 '자판'이 이때 훨씬 이전부터 역사를 조금씩 날조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1867년에 서양과 일본 신문을 통해 외국 정세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
이래도 조선이 은둔의 나라였는가?
https://g.co/gemini/share/16937a3614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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