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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실록 (영락제 이방원)

억불숭유?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

by 사람(史覽) 2025.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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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mu.wiki/w/%EC%88%AD%EC%9C%A0%EC%96%B5%EB%B6%88

 

숭유억불에 대해 검색해 봤다.

숭유억불이란, 조선시대? 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다는 말이다.

나무 위키 자료 등 모든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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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유억불(崇儒抑佛)은 불교 교단의 세력을 강제로 축소시키고 약하게 유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의 종교정책이었다. 숭유(유교를 숭상함)라는 단어가 있지만, 포인트는 억불에 있다. 억불정책(抑佛政策) 또는 배불정책(排佛政策)이라고도 한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개인적으로 불교에 매우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일단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의 영향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특히 고려의 장수 출신이라서 별다른 공부 없이도 열심히만 살면 누구든지 부처가 되어 복을 누릴 수 있다는 선종불교의 교리대로 일생을 살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성혁명 과정에서 기존 세력의 정신적 기둥인 불교의 억제를 주장하는 신진사대부 세력과 손을 잡았기에, 조선 건국과 거의 동시에 불교에 대한 종교탄압 정책들이 하나하나 시행되었다. 2대 정종은 알려졌다시피 이방원의 허수아비 군주였고 재위기간도 짧아 이렇다 할 억불 정책은 없었고, 본격적인 억불 정책은 태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억불 정책이 태종때부터 시작 되었다고? ㅎ

 

사실일까?

 


태종실록10권, 태종 5년 11월 21일 계축 2번째기사 1405년 명 영락(永樂) 3년

의정부에서 불교의 퇴폐상을 열거하고, 금산사 등의 토지와 노비를 환수할 것을 청하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상서(上書)하여 사사(寺社)의 토전(土田)과 인구(人口)를 혁파(革罷)할 것을 청하였다. 이때에 금산사(金山寺) 주지(住持) 도징(道澄)이 그 절[寺]의 종[婢] 강장(姜庄)·강덕(姜德) 형제(兄弟)를 간통하고, 토전(土田)의 소출(所出)과 노비(奴婢)의 공화(貢貨)를 모두 다 사용(私用)하였으며, 와룡사(臥龍寺) 주지(住持) 설연(雪然)이 그 절[寺]의 종[婢] 가이(加伊) 등 다섯 명을 간통하였다. 의정부에서 상서(上書)하였다.

 

 

https://sillok.history.go.kr/id/kca_10511021_002

 

위 상서처럼 불교의 사찰 중 일부들의 잘못을 고하는 것들일 뿐.

 

불교의 폐단이 있는 것에대한 것들에 잘목을 바로 잡으려 함이었다.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위 링크(조선왕조실록)를 들어가 찾아보라.

 

오히려 아래처럼 강의하고 듣고 찾고 했다는 게 사실이다.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결론은

 

조선왕조는 '억불'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