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상열차분야지도 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를 알면 천하를 알 수 있다.
역사학자들이 이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과업을 잊은 것.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1395년(태조 4)에 권근 등 12명의 천문학자들이 만든것을 세종 때 다시 복원.
상단의 천문도 원 안에는 1,467개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하단에는 천문도의 명칭, 권근의 발문, 우주론, 제작 참여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질서를 돌에 새기다: 천상열차분야지도 (天象列次分野之圖)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차분야지도)**는 조선 건국 초기인 1395년(태조 4년)에 제작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石刻) 천문도입니다. 단순한 별자리를 그린 그림을 넘어,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천문학의 과학적 성취를 집대성한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현재 국보 제228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름의 의미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명칭은 그 자체로 천문도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 천상(天象): 하늘의 모든 형상, 즉 해와 달, 행성, 별들의 움직임과 변화를 의미합니다.
- 열차(列次): 별자리들을 순서와 위치에 따라 배열했다는 뜻입니다.
- 분야(分野): 하늘의 별자리 구역을 땅의 지역(중국의 12주)과 대응시킨다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천문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하늘의 특정 구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그에 해당하는 지상의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던 사상입니다.
- 지도(之圖): 위의 모든 것을 종합하여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늘의 모습을 차례대로 배열하고, 지상의 영역과 연결한 그림'이라는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작 배경과 역사적 의의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은 단순한 과학적 목적을 넘어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왕조의 정통성 확립: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왕조가 하늘의 뜻(天命)에 따라 세워졌음을 만천하에 공표하고자 했습니다. 천문도는 왕이 하늘의 질서를 이해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졌기에, 정교한 천문도 제작은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 고구려 천문학의 계승: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권근(權近)이 쓴 발문에 따르면, 태조가 평양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구려 시대의 천문도 탁본을 기반으로 하되, 오랜 세월로 인해 생긴 별의 위치 오차를 당시의 관측 기술로 보정하여 완성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조선이 고구려의 유구한 역사와 과학 기술을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과학적 내용과 가치
가로 약 122.8cm, 세로 약 200.9cm 크기의 검은 대리암에 새겨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방대한 천문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 별자리: 중심의 북극성을 기준으로 총 1,467개의 별들이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에서 관측 가능한 거의 모든 별을 표현한 것입니다.
- 천문 좌표: 하늘의 적도와 황도(해가 지나가는 길), 그리고 북극을 중심으로 항상 보이는 별들(주극성)의 범위가 원으로 그려져 있어, 현대 천문학의 좌표 개념과 유사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 구성: 크게 원형의 성도(星圖) 부분과 그 아래의 설명 부분으로 나뉩니다. 하단에는 천문도의 명칭, 제작에 참여한 권근, 유방택(柳方澤) 등 12명의 관료 이름과 관직, 제작 경위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 천문도는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1247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로서, 독자적인 천문 관측 기술과 천문 지식을 보유했던 우리 선조들의 높은 과학 수준을 증명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주요 판본과 보존
- 태조 석각본 (국보 제228호): 1395년에 제작된 원본으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 마모되었지만, 그 원형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 숙종 복각본 (보물 제837호): 1687년(숙종 13년), 태조 석각본이 마모되자 이를 그대로 다시 새긴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태조 석각본의 내용을 더욱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의 건국 이념과 과학 정신이 결합된 결정체이자, 고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 천문학의 역사를 증명하는 자랑스러운 과학 문화유산입니다.
권근에 따르면 고구려 때 천문도 탁본을 기본으로 만들었다고 나온다.
그 말인 즉, 이미 천문을 정확히 읽고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과학기술이 뒤쳐져 있었다고?
'세종 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체 운행의 규칙성과 시간을 측정했던 민족 (0) | 2025.04.14 |
|---|---|
| 세계 언어의 뿌리 (0) | 2025.04.14 |
| 권총 최초 제작년도는 1437년 (0) | 2025.04.12 |
| 두만강 남쪽은 기름진 들이 수백리 (0) | 2025.04.11 |
| 세종 때 밤섬에 뽕나무 8천 2백 80주. (0) | 2025.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