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2권, 태조 1년 9월 28일 병오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개국 공신(開國功臣)들이 왕세자와 여러 왕자들과 회동(會同)하여 왕륜동(王輪洞)에서 맹세하였다. 그 〈맹약(盟約)을〉 기록한 문서에 이러하였다.
"문하 좌시중(門下左侍中) 배극렴(裵克廉) 등은 감히 황천 후토(皇天后土)와 송악(松嶽)·성황(城隍) 등 모든 신령에게 고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하늘의 뜻에 응하고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대명(大命)을 받자왔으므로...
○丙午/開國功臣會王世子及諸王子, 盟于王輪洞。
王世子 : 임금에 오를 왕세자.
及諸王子(급제왕자) : 왕자에 미치는 급.
개국공신회왕세자급제왕자, 맹우왕륜동
개국 공신(開國功臣)모여 왕세자와 급제왕자 왕륜동(王輪洞) 맹우하다.
왕륜동에서 맹세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면 1차원
https://sillok.history.go.kr/id/kaa_10109028_001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2권, 태조 1년 9월 28일 병오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개국 공신이 여러 왕자들과 왕륜동에서 회맹한 내용
sillok.history.go.kr
세자(世子)에게 명하여 왕자(王子)와 여러 군(君)에게 잔치를 베풀게 하였으니, 절비(節妃)의 삼년상(三年喪)을 마친 때문이었다.
○丙辰/命世子宴王子諸君, 以節妃三年喪畢也。
至是, 諸王子召之, 率甲士出闕門遲回, 以至於死
이때에 와서 여러 왕자들이 그를 부르니 갑사(甲士)를 거느리고 대궐 문에 나가서 어정거리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賢吏(현리) 는 현명한 관리로써
벼슬아치 2. 관리(官吏) 3. 아전(衙前: 조선 시대(時代)에, 중앙과 지방의 관아에 속한 구실아치) 이다.

태종실록28권, 태종 14년 10월 8일 무인 2/2 기사
/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https://sillok.history.go.kr/id/kca_11410008_002
○橫川縣監鄭綿免。 上之幸橫川也, 聞橫川縣吏黃尙中善騎射, 命使從行。 綿怒尙中不告辭, 囚其母, 坐不恭, 下義禁府, 遂罷職。
횡천 현감(橫川縣監) 정면(鄭綿)이 파면되었다. 임금이 횡천(橫川)에 거둥하였을 적에 횡천(橫川) 현리(縣吏) 황상중(黃尙中)이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쏜다는 말을 듣고 따라가도록 명하였었다. 정면이 황상중의 하직을 고(告)하지 않은 것에 노하여 그 어미를 가두었으므로, 불공죄(不恭罪)에 연좌되어 의금부(義禁府)에 내렸다가 드디어 파직하였다.
세종실록 151권, 지리지 전라도 장흥 도호부 창평현
https://sillok.history.go.kr/id/kda_40007004_008
◎ 昌平: 縣令一人。 本百濟 屈支縣, 新羅改祈陽縣,【一云鳴平。】 爲武州領縣, 高麗改昌平縣, 爲羅州屬縣。 土人諺傳縣吏卓自寶有制南賊之功, 陞爲縣令, 本朝因之。 古屬縣一, 甲鄕。 部曲一, 長平。 右甲鄕、長平, 高麗時, 屬于本縣, 後移屬羅州, 其後移屬光州。 恭讓王三年辛未, 以附近還屬于本縣。 四境, 東北距潭陽東九里, 北八里, 西距茂珍十里, 南距同福二十六里。 戶二百十九, 口九百五十二。 軍丁, 侍衛軍三十四, 營鎭軍四十五, 船軍一百三十八。 土姓六, 安、曺、辛、丁、金、卓。 京來姓三, 李、咸、鄭; 續姓一, 文。【開城來鄕吏。】 長平姓四, 辛、玄、金、元; 亡姓一, 朴。 甲鄕姓二, 陳、昇。 厥土肥十分之四, 墾田二千五百七十七結。【水田差多。】 土宜五穀, 桑、麻、木緜。 土貢, 狐狸皮、黃毛、山獺皮、班猫、蜂蜜、黃蠟、漆、棗、柿、席、生苧、紅花。 藥材, 鹿角霜、麥門冬、蘭香。 土産, 簜篠。 鐵場。【在縣南深谷里洞。】
본래 백제의 굴지현(屈支縣)이었는데, 신라에서 기양현(祈陽縣)으로 고쳐서【일명 명평(鳴平)이라고 한다. 】 무주(武州)276) 의 영현(領縣)으로 하였고, 고려에서 창평현(昌平縣)으로 고쳐서 나주(羅州)의 속현(屬縣)으로 하였는데, 본토 사람의 속설에 전하기를, "현리(縣吏) 탁자보(卓自寶)가 남적(南賊)을 제압한 공이 있어서 현령(縣令)으로 승격되었다."하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고속현(古屬縣)이 1이니, 갑향(甲鄕)이요, 부곡(部曲)이 1이니, 장평(長平)이다. 위의 갑향과 장평은 고려 때 본현(本縣)에 속(屬)하였다가 뒤에 나주에 이속(移屬)하였고, 그 뒤에 광주(光州)에 이속(移屬)하였으며, 공양왕(恭讓王) 3년 신미에 부근(附近)으로써 본현에 환속(還屬)하였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북쪽이 담양(潭陽)에 이르는데, 동쪽이 9리, 북쪽이 8리요, 서쪽으로 무진(茂珍)277) 에 이르기 10리, 남쪽으로 동복(同福)에 이르기 26리다.
호수가 2백 19호요, 인구가 9백 52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34명이요, 영진군이 45명이요, 선군이 1백 38명이다.
토성(土姓)이 6이니, 안(安)·조(曺)·신(辛)·정(丁)·김(金)·탁(卓)이요, 경래성(京來姓)이 3이니, 이(李)·함(咸)·정(鄭)이요, 속성(續姓)이 1이니, 문(文)이다.【개성(開城)에서 왔는데, 향리(鄕吏)이다. 】 장평(長平)의 성이 4이니, 신(辛)·현(玄)·김(金)·원(元)이요, 망성(亡姓)이 1이니, 박(朴)이요, 갑향(甲鄕)의 성이 2이니, 진(陳)·승(昇)이다.
땅이 기름진 것이 10분의 4가 되며, 간전(墾田)이 2천 5백 77결이요,【논이 조금 많다. 】 토의(土宜)가 오곡·뽕나무·삼[麻]·목화이다. 토공(土貢)이 여우가죽·삵괭이가죽·족제비털[黃毛]·잘·가뢰[斑猫]·꿀·밀[黃蠟]·칠(漆)·대추·감·생모시·잇[紅花]이요, 약재가 녹각상(鹿角霜)·겨우살이풀뿌리[麥門冬]·난향(蘭香)이요, 토산(土産)이 가는 대·왕대이다. 철장(鐵場)【현의 남쪽 심곡리동(深谷里洞)에 있다. 】
2천 5백 77결이면 어느정도되는 양인가?

이 외에도 현리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다 찾아보자
https://sillok.history.go.kr/search/searchResultList.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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