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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사은사(謝恩使)였던 영복군(永福君) 왕격(王鬲)과 정당 문학(政堂文學) 권중화(權仲和)가 중국 서울로부터 돌아와서 말하였다.
"황태자가 4월 25일에 세상을 떠나니, 황제가 황태자의 아들 윤문(允炆)을 세워 황태손(皇太孫)으로 삼았습니다."
○乙亥前朝謝恩使永福君王鬲政堂文學權仲和回自京師言 "皇太子以四月二十五日薨, 帝立太子之子允炆爲皇太孫。
(을해전조사은사영덕군왕정당문학권중화회자경사언황태자이사월이십오훙 제립태자지자윤문위황태자。)
前朝(전조) 아침 전
謝恩使(사은사) 사은사는 절이 아니다. 감사의 뜻을 태조께 알리기 위해 보낸 사절이라 보면 된다.
回自京師 회자경사 : 돌아오다 스스로 경사에서
경사라고 써 있는데. 그런데 중국서울로부터 돌아오다는 말이 어디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왜 원문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소설을 쓰고 있나.
薨 : 훙서할 훙(훙서 : 왕(王)이나 왕족(王族), 귀족(貴族)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帝立(제를 세우다)
太子之子允炆爲皇太孫(태자지자윤문위황태손)
允炆(윤문)
태자의 아들을 참으로 따뜻하게 황태손으로 세우다.
조선왕조실록 : 원본 보기
태조실록1권, 태조 1년 8월 26일 을해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사은사가 돌아와 명의 황태자가 죽고 그 아들 윤문으로 황태손을 삼았음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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