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태조 때, 금강산에 있는 사찰에 쌀을 시주한 기록이 있다.
그 양을 보면 상상을 초원한다.
금강산의 의문
https://sillok.history.go.kr/id/kaa_10612003_002
임금이 명하여 강릉도(江陵道) 쌀 6백 석을 대산(臺山)·금강산(金剛山)의 여러 절에 시사(施舍)하게 하였다.
○上命以江陵道米六百石, 施于臺山 、金剛山諸蘭若。
석(䄷)은 척근법의 하나로, 부피의 단위이다. 한 섬은 용량 180리터이며, 곡식의 종류나 상태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벼는 200 kg, 쌀은 144 kg, 이다.
강릉도江陵道
도(道) 이름. 지금의 강원도의 옛 이름. 고려 원종(元宗) 4년(1263)에 명주도(溟州道)를 고친 이름이다. “江原道”를 참고하라.
어쨌든 강릉에 있는 벼 600석을 하사하였다고 나온다.
벼 600석 = 200kg * 600석 = 12톤
12톤의 벼를 금강산의 여러 절에 시사하였다고 한다.
'12톤'의 벼를 금강산에 있는 절에?
그리고 시사하는 것도 그렇지만 '여러 절'에 시사했다는 말은 없다.
'태조 실록 (이성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복군왕을 두어 화령부를 막게하다 (0) | 2025.04.26 |
---|---|
왕자와 왕세자는 급이 분명 다르다. (0) | 2025.04.12 |
이성계 고향 화령(和寧)은 어디인가? (5) | 2025.04.08 |
병사가 멀리 나아가 (0) | 2025.03.06 |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7월 17일 (0) | 2025.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