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 보다 더 재미있는 역사.
태조의 기록은 웬만한 무협지는 발끝도 안 따라온다.
○冬, 紅巾賊僞平章潘誠、沙劉、關先生、朱元帥、破頭潘等二十萬衆,
○동, 홍건적 위 평장 반성, 사류, 관선생, 주원수, 파두반 등 이십만 중,
渡鴨綠江, 闌入西北鄙,
도 압록강, 난입 서북비,
移文于我曰:
이문 어 아 왈:
"將兵百十萬而東, 其速迎降。"
장병 백십만 이동, 기속영항."
太祖斬賊王元帥以下百餘級, 擒一人以獻。
태조 참 적왕 원수 이하 백여급, 금 일인 이헌.
태조실록1권, 총서 7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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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 해석 :
○겨울에, 홍건적의 위(僞) 평장사(거짓된 관직명)인 반성(潘誠), 사류(沙劉), 관선생(關先生), 주원수(朱元帥), 파두반(破頭潘) 등 이십만 명의 무리가 압록강을 건너 서북 변경에 침입하였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글을 보내 이르기를:
“병사 백십만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향하니, 빨리 항복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태조(이성계)는 적의 왕과 원수 이하 백여 명의 머리를 베고, 한 명을 사로잡아 바쳤다.
국사편찬위원회 해석:
겨울에 홍건적(紅巾賊) 위평장(僞平章) 반성(潘誠)·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파두번(破頭潘) 등 20만 군사가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서북 변방에 함부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글을 보내[移文]기를,
"군사 1백 10만 명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니 속히 맞아 항복하라."
하였다. 태조는 적의 왕 원수(王元帥) 이하 백여 명의 목을 베고 한 명을 사로잡아서 왕에게 바쳤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110만명이든, 20만명이든지
이렇게 엄청난 병력인데,
적의 왕 원수(王元帥) 이하 백여 명의 목을 베고 한 명을 사로잡아서 왕에게 바쳤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군사력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중공 영화나 삼국지 보면 홍건적 때문에 온 난리가 나는데, 이성계가 나가면 그냥 쓸어버리신다.
태조께서는 전쟁의 신이 맞다.

조선왕조실록 : 원본 보기
○冬, 紅巾賊僞平章潘誠、沙劉、關先生、朱元帥、破頭潘等二十萬衆, 渡鴨綠江, 闌入西北鄙, 移文于我曰: "將兵百十萬而東, 其速迎降。" 太祖斬賊王元帥以下百餘級, 擒一人以獻。 【태백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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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음 기사를 보자.
〔○〕十一月, 恭愍王南遷, 賊據京城。
11월에 공민왕이 남쪽으로 파천(播遷)하니, 적이 서울을 점거하였다.

〔○〕恭愍王十一年壬寅正月, 參知政事安祐等九元帥率兵二十萬, 進取京城, 斬賊魁沙劉、關先生等, 斬首凡一十餘萬。 時太祖以麾下親兵二千人, 入自東大門, 先登大破之, 威名益著。 攻城之日, 賊雖窮蹙, 築壘固守, 會日暮, 諸軍進圍逼之。 太祖止路邊一家, 夜半, 賊闌圍而走。 太祖馳至東門, 賊及我軍, 爭門雜沓, 不可出。 有後至賊, 以槍刺太祖右耳後甚急, 太祖遂拔劍斮前七八人, 躍馬踰城, 馬不蹉跌, 人皆神之。
공민왕 11년(1362) 임인 정월에 참지정사(參知政事) 안우(安祐) 등 9원수(元帥)가 군사 20만 명을 거느리고 나아와서 서울을 수복하고 적의 괴수 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 등을 목베었으니, 적의 목을 벤 것이 대개 10여만이나 되었다. 이때 태조는 휘하(麾下)의 친병(親兵) 2천 명을 거느리고 동대문(東大門)으로 들어가서 먼저 성에 올라 적을 크게 부수니, 위명(威名)이 더욱 나타났다. 성을 공격하는 날에 적이 비록 궁지에 몰렸으나 진루(陣壘)를 쌓아 굳게 지키었다. 때마침 날이 저물었는데 여러 군대[諸軍]들이 전진하여 이를 포위하고 핍박(逼迫)하였다. 태조는 길가의 한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밤중에 적이 포위를 뚫고 달아나므로, 태조는 달려가서 동문(東門)에 이르렀다. 적과 우리 군사가 문을 먼저 나가려고 다투었으나, 매우 분잡(紛雜)하여 나갈 수가 없었다. 뒤에서 온 적이 창으로 태조의 오른쪽 귀 뒤를 찌르려 함이 매우 급(急)한데, 태조는 칼을 빼어 앞에 있는 적 7, 8명을 베고 말을 채찍질해 뛰게 하여 성을 넘었으나, 말이 넘어지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이후로 몇 개월동안 홍건적의 뿌리를 뽑기위해 여러 전투를 치르게 된다.
42번째 기사에서 이상한 점을 찾았다.
황건적의 갑옷.
7월, 나하추(納哈出)가 군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중략)... 태조가 윗층에서 이를 보니, 은갑옷[銀甲]을 입은 두 적장(賊將)이 파라실을 쫓아 창을 겨누어 거의 미치게 되었는지라 태조는 말을 돌려 두 장수를 쏘아 모두 죽이고, 즉시 20여 인을 연달아 죽이고... (중략)...
8월, 범이 서울에 들어와서 사람과 짐승을 많이 해치니, 태조가 이를 쏘아 죽였다.
https://sillok.history.go.kr/id/kaa_000065
10월, 태조는 나가 사냥하다가 범을 쏘아 잡아서 우왕에게 바치니, 우왕은 의복을 내려 주면서 이내 유시(諭示)하였다.
https://sillok.history.go.kr/id/kaa_000058
8월, 범이 서울에 들어와서 사람과 짐승을 많이 해치니, 태조가 이를 쏘아 죽였다.
https://sillok.history.go.kr/id/kaa_000065
10월, 태조는 나가 사냥하다가 범을 쏘아 잡아서 우왕에게 바치니, 우왕은 의복을 내려 주면서 이내 유시(諭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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