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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발인반차도 1896년 경복궁에 있던 명성황후 (1851~1895)의 빈전을 경운궁으로 옮기는 행렬을 그린 반차도와 1897년 명성황후 의 발인시 행렬을 그린 반차도이다.서지사항능화문이 捺押된 노란색 표지 왼쪽에 두 줄로 “殯殿移奉慶運宮時班次圖 明成皇后發靷班次圖”의 서명이 필사되었고, 붉은 색 冊絲로 五針眼釘되었다. 無郭의 백지에 다양한 색상으로 선명하게 채색된 반차도가 전체 56張에 걸쳐 그려져 있고, 마지막 2장은 여백으로 남아있다.체제 및 내용명성황후 의 국장과 관련된 빈전·발인 행렬을 그린 두 반차도만을 모아 한 책으로 필사하였다. 명성황후 가 1895년 8월 20일 경복궁 坤寧閤에서 일본 자객들에 의해 살해 된 후 3년이 지나서야 국장이 거행되었다.‘殯殿移奉慶運宮時班次圖’는 고종 이 1896년 경복궁에 모셨.. 2025. 7. 25.
농상을 업신 여겼다고? 태조실록2권, 태조 1년 9월 24일 임인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1392년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배극렴·조준 등이 22조목을 상언(上言)하였다. "1. 학교는 풍화(風化)의 근원이고, 농상(農桑)은 의식(衣食)의 근본이니, 학교를 일으켜서 인재(人才)를 양성하고, 농상을 권장하여 백성을 잘 살게 할 것이며, 1. 수령(守令)은 전야(田野)가 황폐되고 개간되는 것과, 호구(戶口)가 증가되고 감손되는 것 등의 일로써 출척(黜陟)할 것이며, 1. 신구(新舊) 수령(守令)이 교대할 즈음에 일이 많이 해이(解弛)해지니, 지금부터는 서로 해유(解由)를 주고받은 후에 임지(任地)를 떠나게 할 것이며, 1. 봉명 사인(奉命使人) 과 군관(軍官)·민관(民官)은 관(官)에서 미곡을 급여하고 말을 주는.. 2025. 7. 25.
200년 가까이 작업했다. 고종실록4권, 고종 4년 3월 7일 신유 5번째기사 1867년 조선 개국(開國) 476년조선 개국이라 국사편찬위에서 위 제목을 썼지만, 태조 때 국호를 조선이라 한 적 없다. 아무튼 아래 기사를 보면 해석해 놓은 수준이 기가 막힌다. 중국? 예부에 회답 자문을 보내다. "귀 예부(禮部)에서 보낸 자문 안에 있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하나 접수하였습니다. 생각건대 작은 나라가 서양 여러 나라들의 빈번한 침범을 받게 되어 큰 나라에서 극진히 돌보아주시는 근심을 끼쳤습니다. 그리하여 일체 변경에 관계되는 정보에 대하여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듣는 대로 기미가 있을 때마다 급히 자문을 보내어 통지하여 주었으니 그 덕이 매우 큽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신문에 실린 서양 각 나라와 일본의 정세 다섯 가지를 가지.. 2025. 7. 23.
금단의 땅, A Forbidden Land : Voyages To the Corea A Forbidden Land : Voyages To the Corea 1880년 https://ssl.yes24.com/dMyCart/CartMain우리나라 구매처 (예스24) 아래 미국 아카이브에 들어가면 원본을 볼 수 있다. https://archive.org/details/aforbiddenlandv00oppegoog/page/n76/mode/2up A Forbidden Land: Voyages to the Coreaby Ernst Jakob OppertPublication date 1880Topics corean, corea, chinese, coreans, natives, tlie, china, tho, cloth, native, small post, corean government, ro.. 2025. 7. 23.
일본에서 코끼리를 받치다? ○日本國王源義持, 遣使獻象。 象, 我國未嘗有也。 命司僕養之, 日費豆四五斗。일본 국왕(日本國王) 원의지(源義持)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 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두(斗)씩을 소비하였다. 2025. 7. 22.
언제부터 '서울' 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나. 구글의 대답 AI 개요 "서울"이라는 명칭은 조선 시대부터 수도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로 사용되었으며, 1946년 9월 28일 미군정의 서울시헌장 발표와 함께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지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조선 시대:한양 도성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로 "서울"이 사용되었습니다. 1946년:미군정의 서울시헌장 발표와 함께 법적으로 수도 명칭으로 "서울"이 확정되었습니다. 1949년:서울은 서울특별시로 전환되었고, 이후 행정 기구로서의 위상이 강화되었습니다. 참고:"서울"이라는 명칭은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 경성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으나, "서울"은 민간에서 수도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 태조때.. 2025.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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